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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관내분실> 영어로 읽기

문학으로 영어공부

by 스노우필드 2020. 10. 1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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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으로 영어공부 2탄] 김초엽 「관내분실」

SF매니아가 아니더라도 김초엽 작가의 이름은 대부분 들어보셨을 겁니다. 2019년 김초엽이 출간한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2020년 9월 기준 교보문고 한국소설 판매량 2위를 기록했습니다. 6월 기준으로 이미 판매량이 10만 부를 돌파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괴물 신인입니다.

사진출처 : 한국일보

아득한 우주 속,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안의 변하지 않는 본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SF소설을 읽다보면 오지 않을 법한 미래에 던져진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김초엽은 늙은 우주인, 임산부의 사라진 엄마 등,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등장인물과 함께 우아하게 짜여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내밉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If we can't go at the speed of light)에 수록된 단편 「관내분실」번역본을 공개했습니다. 관내분실은 김초엽 작가의 등단작입니다. 내용 일부를 공유합니다. 역시, 번역을 먼저 해본 후 실제 번역본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해 거쳤더니 효과가 좋았습니다. 머릿속에서만 번역을 떠올리지 말고 실제로 컴퓨터나 손글씨로 영어 문장을 써내려가면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www.sei.cmu.edu

관내분실 Irretrievable

translation by Youngjae Josephine Bae

…(전략) 휴가 첫날 지민은 병원에 갔다. 의사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청진기를 이용해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태아의 심장은 임산부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뛴다. 그만큼 생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일까.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심장 박동 수도 정상적이고, 태아도 건강한 상태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나 진료실을 나와 접수 창구 앞으로 올 때까지도 지민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Jimin went to the hospital on the first day of her leave. The doctor let her listen to the baby’s heartbeat through the traditional method of using a stethoscope. A baby’s heart beats twice as fast as the mother’s. Was it because babies were that much more determined to live? The doctor smiled and told her the fetus was healthy with a normal heart rate. Nevertheless, the look on Jimin’s face remained rigid as she left the examining room and walked past the reception desk.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배 속에 태아가 있고 그 심장 소리를 듣기까지 했는데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치민다. 최근에 지민은 다른 임산부들이 온라인에 쓴 글을 많이 읽었다. 다들 비슷한 글이었다. 기다리던 임신을 해서 너무 행복하고, 배 속의 아이를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What was wrong with her? She had a fetus in her womb and even heard its heart beating, but it failed to rouse affection in her. Instead, she had to wrestle with a bunch of inexplicable emotions. Lately, she’d read a lot of stories other pregnant women shared online. The stories were all similar. They mentioned how happy the women were to finally be pregnant and that they were already in love with the child inside them.


지민은 아니었다. 태아의 사진을 보고 심장 소리를 들으면 조금씩 설렘이나 기대감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지민 자신이 건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줄 준비도 되지 않은 게 아닐까. 복잡한 생각이 이어졌다.

It wasn’t like that for Jimin. She thought looking at a photo of the fetus and hearing its heart beating would stir some sense of anticipation or excitement in her, but it didn’t. Was she unprepared to give proper love because she herself had never received it?


엄마는 죽었다. 그 사실이 더는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 저편으로 밀어놓았던, 무의식이었든 의식해서였든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의 부재가 물밀 듯이 지민을 덮쳤다. 한 번 자각하자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제어할 수도 없었다. 다른 임산부들이 친정엄마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던 것도 떠올랐다. '요즘 호르몬 때문인지 기분이 들쭉날쭉한데, 친정엄마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더라고요…."

Mom was dead. Jimin thought the fact could no longer have any effect on her life. But now the absence of her mother, something she had pushed back into a faraway corner of her mind and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neglected to think about, hit her like a tidal wave. Once she realized this, she couldn’t control all the random thoughts that ensued. The way other pregnant women wrote about their own mothers came to mind. Maybe the hormones are to blame for the mood swings I’m going through these days, and then my thoughts often turn to my mother . . .


그날 지민은 엄마의 '마인드'가 도서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엄마를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지민도 알 수 없었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 맺었던 엄마는 아니었으니까. 집 안을 다 뒤져서 아무 데나 처박아두었던 카드를 꺼내 도서관으로 가는 동안에도, 만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잘 정리되지 않았다. 어차피 진짜 엄마도 아니니 될 대로 되라는 심정도 있었다. 원망의 말을 할까. 왜 그랬냐고 물어보기라도 할까. 

That day, Jimin remembered that Mom’s mind was deposited at the library. However, she had no idea what purpose could be served by meeting her after all this time. It wasn’t as if their relationship had been anything at all like that of others. On her way to the library after rummaging through the whole house to find the card, Jimin wasn’t sure what she wished to say to Mom. Part of her didn’t care since the mind wasn’t even her real mom. Should she hurl words of resentment? Should she ask why she behaved the way she did?

어쨌든 다 소용없는 생각이 되어버렸다. 묻고 싶은 말들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엄마가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으니. 

It had been all for nothing anyway. She’d been informed that Mom had gone missing even before she could figure out the questions she wanted to ask.


■단어정리
 
ensue

(v) happens immediately after another event. 뒤따르다
[예문] A silence ensued. 정적이 흘렀다.
 
fetus 태아 / [비교]embryo 배아
 
rigid
-엄격하다, 융통성없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딱딱하다' 같은 표현으로도 사용되네요. 여기서는 '표정이 굳어 있다'를 'The face remained rigid'라고 번역했습니다.

wrestle with 
-stuggle with, try to deal with
-against를 붙여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hurl
(v)내던지다, 패대기치다 ⇛ (말을) 쏟아내다, 모욕 등을 퍼붓다
[예문]Rival fans hurled abuse at each other.
       경쟁 팀의 팬들이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resentment 
(n)원망, 비통함, 한맺힘, 뒤끝 등등
[예문]When did you have resentment against your mom? / 어떨 때 엄마가 원망스러웠나요?


■주요 표현 정리
- 어려운 어휘가 많이 사용된 번역본이 아닙니다. 그러나 원문에선 영어로 옮기기 쉽지 않은 표현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요. 제게 번역이 어려웠던 몇 가지 표현을 함께 정리해보겠습니다.

1. 그만큼 생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일까?
 Was it because babies were that much more determined to live?

- '생의 의지'를 will to live..쯤으로 번역하려 했는데, 'determined to live'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네요.

2.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치민다.
 She had to wrestle with a bunch of inexplicable emotions.

-여기에서 저는 '설명하기 힘든'을 'indescribable'로 번역했는데, inexplicable이 훨씬 알맞는 어휘였습니다. indescribable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형언할 수 없는'을 뜻하는 형용사로, unspeakable, beyond description을 뜻한다네요. 설명이 어려운 애매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적절하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또 치밀어오르는 내면의 감정을 wrestle with 라는 동사구로 처리한 점도 배워둘 점입니다.

3. 기억 저편으로 밀어놓았던 엄마의 부재가 물밀 듯이 지민을 덮쳤다.
 The absence of her mother, something she had pushed back into a faraway corner of her mind,
 hit her like a tidal wave

- '기억 저편'을 faraway corner of mind로 번역했네요. 또, '물밀듯 덮쳤다'에서 사용된 tidal wave는 높은 파도나 해일을 뜻하는데, 어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거나 급증할 때에도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영화 <해운대>의 영어 제목이 <Tidal Wave>라고 하네요.

4. 이제 와서 엄마를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지민도 알 수 없었다.
 She had no idea what purpose could be served by meeting her after all this time. 

-영어식 표현입니다. 우리말 그대로 직역했으면 어색한 번역이 될 뻔 했어요. 관용구로 익혀두려고 합니다. 
what purpose is served by로 google에 검색하면 다양한 실제 용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링크


빨간줄 팍팍 그어지는 오늘의 translation exercise...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지 않나요? 저는 영어공부를 하다가 결국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버렸습니다. (김초엽!김초엽!) 여러분도 책읽기의 즐거움과 어학실력 향상의 기쁨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함께 공부해요!☺

<참고>

[한국문학으로 영어공부] 카테고리에서 소설 작품을 인용할 때에는 저작권 등을 고려해 최소한의 분량만을 공유합니다. 또한,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결말에 결정적 단서가 포함된 부분은 인용하지 않습니다. 
 
번역 출처 : koreanliteraturenow.com/fiction/excerpts/kim-choyeop-irretrievable

 

Irretriev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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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교보문고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에서 이제는 소설을 쓰는 작가 김초엽.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상상의 세계를 특유의 분위기로 손에 잡힐 듯 그려내며,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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